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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반] 현해탄을 건너서
저자  김선아
쪽수  236
정가  22,000
ISBN  979-11-5849
▶ 책 소개

출간 즉시 프로레슬링협회, 스포츠 업계 관심 1위
거금도 출신 작가와 강기정 광주시장, 오승록 노원구청장, 공영민 고흥군수, 김명수 김일 홍보대사, 이상백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제작사 에이스토리 대표외 다수가 적극 추천하는 책!

박치기왕 김일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온전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다!

현해탄을 건너 프로레슬링을 통해 1960~1970년대에 혼란스럽고 힘들던 시대에 한국인의 가슴에 희망과 불굴의 의지를 전하며 시대의 아픔을 달래주고 통쾌함을 선사했던 대한민국의 스포츠 영웅이었다

이 책은 K-컬처가 전 세계를 사로잡으며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금 ‘박치기왕’ 김일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고향 거금도에서 태어난 김선아 작가가 심층 인터뷰하여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주변 인물의 구술과 탐문조사를 거쳐, 내밀한 부분까지 찾아냈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시점에 더욱 빛난다.

책 속에서 마주하는 그의 삶은 다양한 수식어 못지않게 흥미 진지하며, 죽을 각오로 밀항을 하면서까지 일본으로 건너가 역도산의 제자가 되기까지, 이마가 찢어지고 머리가 깨지면서도 훈련하여 박치기라는 독보적인 기술을 만들어내며, 일본과 전 세계를 다니며 챔피언이 되어 전성기를 누렸고, 한국에 돌아와 국민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던 인생 역전이 펼쳐진다. 지나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 영웅의 옛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안겨준 그의 활약과 행적을 되새기며 오랫동안 망각 속에 묻어 버렸던 소중한 기억들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끼게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김선아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에서 우러나는 오아시스 같은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그려 나가는 작가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 거금도(고흥군 금산면)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향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이후 MBC 방송아카데미에서 드라마 작가 수업을 받은 데 이어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2020년에는 살아오면서 차마 드러내지 못한 여자들의 사랑과 내면 이야기를 신랄한 수다로 풀어놓은 《한번쯤은 내맘대로》가 대학로 연극무대에 올라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오디오북 제작 지원 작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에 펴낸 《돌직구 아줌마의 공감 수다-따져봅시다》는 5월 31일 ‘아줌마의 날’에 화제가 되어 작가로서 성가를 높였다.
이후 지은이는 고향 거금도 사람들의 영웅,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영웅으로 60~70년대를 풍미한 프로레슬러 김일의 일대기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오랜 관심과 작업의 산물이다. 이 책을 원작으로 스포츠 영웅 김일의 삶을 담은 드라마가 제작되어 방영될 예정이다.

이메일 ksa1834@hanmail.net


▶ 차례

들어가며 영원한 스포츠 영웅

1장 영원히 기억될 영웅
생존의 조건
생애 최후의 승부

2장 현해탄을 건너다
멀고도 먼 섬 청년의 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힘
새로운 삶을 꿈꾸며 낯선 땅으로
아버지와 집안 내력
폭압과 질곡의 시대
설움을 달랠 틈도 없이
신이 배달한 편지
꿈에 그리던 만남

3장 고난과 입신의 첫 라운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말로만 듣던 지옥 훈련
데뷔전 패배를 거울삼아
박치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훈련
믿을 수 없는 변화
무적의 박치기왕
아, 아버지

4장 영광의 나날
역도산 왕국의 후계자들
새로운 영웅, 박치기왕 김일
소중한 인연들
세계 챔피언의 길
아, 스승의 죽음

5장 현해탄을 오간 풍운의 레슬러
새로운 여정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다
꿈의 타이틀과 월드 스타

6장 마지막 불꽃
아직은 은퇴할 때가 아니다
후예 양성과 숨겨온 고통
영웅의 강렬했던 황혼
링을 떠난 영웅의 인생무상
다시 고국으로
화해와 이별 그리고 영면

맺음말 시대의 영웅을 기억하며

김일 연보 및 상훈, 안장
김일선수가 걸어온 길


▶ 책 속으로

“역도산이 또 이겼다는군. 대단해.”
“덩치가 산만 한 미국 선수들을 당수로 때려눕혔대. 역도산의 주먹에 얼굴을 맞은 미국 선수들은 피를 철철 흘렸고.”
“미국 선수들도 역도산을 보면 벌벌 떤다잖아.”
김일은 선원들이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청년은 씨름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모래판 위가 아닌 곳에서 치고받는 장면은 상상이 잘 안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맨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주먹과 발로 때리고 차고 꺾기를 한 뒤 내던진단 말인가? 싸움질을 그렇게 대놓고 한다는 것인가? 역도산이라는 사람이 거구의 코쟁이들을 정말 때려눕혔다고?’
--p.30

김일은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식은땀이 났다. 딱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체구, 굵고 호탕한 목소리, 카리스마 넘치는 강인한 모습. 잡지에서 보던 모습보다 훨씬 더 풍채가 돋보였다. 역도산이 김일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더니 말을 건넸다.
“자네가 김일인가? 씨름을 했다지?”
김일은 왠지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예.”
“죽을 각오로 현해탄을 건너왔으니 앞으로 모든 것을 참고 견뎌.”
그러면서 김일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격려했다.
“잘 다듬으면 쓸 만하겠어. 열심히 해.”
이날의 짧고 굵은 첫 만남은 김일의 마음속에 평생 남았다.
--p.60

김일이 박치기를 주특기로 사용한 것처럼, 미국의 프로레슬러 리기 왈드도 박치기 명수였다. 그는 2m에 이르는 장신 거구에 어깨가 딱 벌어진 흑인으로, 윤기 나는 검은 피부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험상궂은 얼굴, 상처투성이 이마를 가져 위압감이 대단했다. 1960년 1월 역도산과의 대결에서도 박치기로 역도산을 곤경에 빠뜨려 하마터면 타이틀을 빼앗길 뻔했다.
“긴타로, 박치기는 할 만한가?”
“예, 열심히 단련하고 있습니다. 이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 흑인 박치기왕과 한번 붙어봐라.”
역도산은 자신과의 대결에서 만만치 않던 리기 왈드를 김일에게 던졌다.
--p.113

관중들도, TV 앞에 모여 앉은 전국의 시청자들도 상황을 읽고 있었다. 이제는 박치기 타임이었다. 모두 체육관이 떠나가라 외쳤다.
“박치기! 박치기! 김일! 김일!”
그때 김일이 사전 동작 없이 갑자기 그대로 박치기를 날리자 루인이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손사래를 치며 일어서는 루인의 머리를 잡고 김일이 왼발을 들어 올리며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혔다. 김일의 트레이드마크 ‘원폭 박치기’가 작렬했다. 한 방, 그리고 또 한 방, 충격을 견디지 못한 루인이 세 번째 박치기 때 링 밖으로 굴렀다.
루인은 카운트 텐 직전에서 다시 올라오려고 했지만, 다시 링 밖으로 나뒹굴었다. 김일의 마무리 원폭 박치기가 터진 것이다. 33분 20초였다. 이로써 김일은 대한민국 최초로 프로레슬링 세계 헤비급 23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p.176

김일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자신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데 대해서도 자긍심을 가졌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숱한 경기를 펼치면서 많은 이들에게 통쾌함과 희망을 준 데 대해 뿌듯해했다. 나이가 들고 초라해져 세상으로부터 외면받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후계자들이 스포츠를 통해 교류하고 발전하길 바랐다.
눈을 감으면 빛나던 과거의 순간들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아직도 사각의 링에서 금방이라도 경기를 펼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젊은 자신과 나이 든 자신이 추억의 한 편에서 교차하며 한 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p.221


▶ 출판사 서평

꿈을 안고 밀항선을 탄 그 청년은
어떻게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가 되었나?

'김일'은 본명보다 '박치기왕'이라는 별명이 더욱 유명한 프로레슬링 선수다. 우리나라 프로레슬링계에서 단연 독보적인 스타였고 1960~1970년대 우리 국민에게 짜릿한 기쁨을 안겨준 스포츠 영웅이다. 그의 일생과 발자취를 담은 책 <현해탄을 건너서>는 박치기왕 김일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전남 고흥군의 작은 섬 거금도 출신인 27세 청년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들려온 소식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고 이후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다. 한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는 선수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함경남도 출신 ‘역도산’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으며 명성이 사방에 퍼지고 있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깨나 쓰던 시골 청년 김일은 역도산의 제자가 되어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요즘 말로 ‘불법체류자’였던 김일은 일본 경찰에 잡혀 수감 되었으나 역도산에게 간절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 결국 역도산의 보증으로 풀려났다. 김일은 역도산의 제자가 되어 프로레슬링을 배웠으며, 나중에 세계 프로레슬링계에 뚜렷이 이름을 새긴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의 3대 제자로 불렸다.
1958년, ‘오오키 긴타로’라는 링네임으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데뷔한 김일은 당시 엄청난 붐을 일으키며 일본 레슬링 무대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며 이름을 높였다. 박치기 기술을 내세워 링 위를 누빈 그는 1963년 WWA 태그 챔피언, 1965년 북미 태그 챔피언과 로키마운틴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며 세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현해탄을 오간 풍운의 레슬러

역도산은 김일에게 혹독한 수련을 시켰고 “남들 다 하는 기술로는 일본에서 출세하지 못한다”는 전략 아래 필살기로 박치기를 익히도록 했다. 독특한 레슬링 기술을 통해 팬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쇼맨십을 꾀한 의도였다. 그런데 박치기라는 기술은 한 방에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통쾌한 맛과 멋이 있었다. ‘일본 선수’와 ‘외국 선수’를 링 위에서 단번에 쓰러뜨리는 이 기술은 김일이 ‘박치기왕’이라 불리게 된 이유였지만, 외세의 억압과 핍박에 시달린 우리 국민에게 후련함과 통쾌함을 안겨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 한국 고유의 스포츠가 아닌 레슬링이라는 생소한 격투기 스포츠에서 한국(조선) 출신 선수가 등장해 일본 선수와 미국 선수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본 우리 국민은 자존감과 자신감, 짜릿함과 해방감을 절절하게 느꼈을 것이다.
김일이 1965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해서 이후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를 국민 스포츠로 거듭하게 하면서 대단한 흥행을 일으켜 성공한 바탕에는 이러한 무의식적인 응원과 지지가 깔려있었다.
김일은 박치기라는 기술로 독보적인 레슬링 영웅이 되었지만 흥행 스포츠를 성공시키는 본능적인 감각이 뛰어난 기획자이자 프로모터이기도 했다. 스승 역도산은 한국 출신이었으나 공식적으로 일본인으로 활약하면서, 전후 일본에서 거구의 미국 선수들을 쓰러뜨림으로써 패전 후 일본인의 콤플렉스를 달래주었다. 김일 역시 한국전쟁 이후 어수선한 국내 상황에서 한국 출신 선수로서 프로레슬링을 국민 스포츠를 끌어올리면서 스스로 국민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김일이 1965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오자마자 한일 간 국교가 수립되었고, 때마침 한국은 TV 시대를 맞아 방송에 걸맞은 스타가 필요했다. 김일은 서양의 거구들이나 일본 선수들을 물리쳐 이기는 모습을 통해 국민에게 기쁨과 자신감을 심어줌으로써 국내 프로레슬링 저변 확대와 함께 국민에게 희망찬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박치기왕에서 세계 스포츠 영웅이 되다

스승 역도산의 사망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김일은 한국에서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1965년 극동 헤비급 챔피언, 1967년 WWA 세계헤비급 챔피언, 1972년 인터내셔널 세계헤비급 챔피언 등 그가 활약한 30년간 20회 넘게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1960년대 전쟁 이후 극심한 빈곤을 겪던 국민들은 그에게 ‘박치기왕’이라는 별명을 선물하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프로레슬링을 지원했던 박정희와 달리 전두환 정권 이후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서서히 저물었지만 김일은 1970년대까지 그 인기를 꾸준히 이어갔다.
1987년부터 경기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후배 양성과 프로레슬링 재건에 힘썼고, 1995년에 일본에서, 2000년에 한국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2006년 향년 77세에 작고한 그는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했다. 2006년 체육훈장 청룡장에 추서됐고 2018년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20년에는 한국 체육 발전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받아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한국인의 가슴에 희망과 불굴의
스포츠 영웅 김일, 우리 모두의 영웅입니다.

김일은 그저 ‘성공한 프로레슬링 선수’라는 평가를 넘어 국민에게 통쾌함과 즐거움, 희망과 자존감을 보여준 ‘스포츠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오랜 일제강점기를 지나, 곧 전쟁이라는 고초를 겪은 뒤 폐허 같은 삶의 터전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국민에게, 희망의 등불로서 국민을 열광시킨 사람이다. 가난하고 암울하던 시절, 벼락과도 같은 박치기로 모든 한국인의 가슴에 희망, 불굴의 의지, 샘솟는 환희를 선사해준 스포츠 영웅 김일은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는 이 시대에 재조명받아야 마땅한 위대한 스포츠맨이다.


▶ 추천사
 

김일은 1960~1970년대를 주름잡은 세계적 프로레슬러였다. 특히 역도산의 적통으로 인정받은 그는 한일 양국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비교 불가능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그런 영웅의 충실한 기록이 새로 나와 기쁘기 한량없다.
-김수홍 (사)대한프로레슬링협회 회장

김일 그를 기리는 일은 고향 거금도와 고국의 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일이다. 그의 도전과 꿈을 담은 이 책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멘토가 될 것이다.
-김명수 김일 홍보대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 분투하던 시대, '박치기왕' 김일이라는 영웅이 있어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영웅의 서사를 담은 이 책은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세워나가야 할 우리에게도 용기와 힘을 줍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우리 고흥은 풍부한 물산, 수려한 풍치 등 자랑거리가 많지만, 걸출한 인물이 최고 자랑거리다. 그중 최고 영웅 김일의 일생과 활약상을 잘 보여주는 이 책을 군민을 넘어 전 국민의 애독서로 추천합니다.
-공영민 고흥군수
 
김일 선수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TV 있는 집은 동네 극장이 되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박치기! 박치기!”를 연호하면서 우리를 살맛 나게 했던 영웅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다. 반갑고 반갑다.
-박병선 순천세계수석박물관 관장

고향 거금도에서 태어나고, 김일 선수가 마지막 눈을 감은 노원의 구청장이 된 내게 김일은 자부심이자 용기의 원천이다. 세상을 울린 그의 박치기를 떠올리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맨땅에 헤딩’도 결코 두렵지 않다.
-오승록 서울시 노원구청장

우리 세대는 김일 프로레슬러의 통쾌한 경기를 보며 용기와 꿈을 키워왔습니다. 현해탄과 태평양을 넘나들며 활약한 우리들의 영웅이며 전국에 있는 섬 최초로 전기가 들어오게 한 것은 고향에 대한 애향심과 거금도 인에게는 큰 자랑입니다.
-이태호 재경금산면향우회 회장

한 사람의 이야기가 한 세대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일은 바로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시대의 얼굴이자 링 위의 신화였던 김일 선생님의 일대기는 독자분들께 감동과 교훈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백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제작사 에이스토리 대표

박치기왕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다들 TV 앞에 모여 경기 시작을 숨죽여 기다렸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에 손에 땀을 쥐었다가 김일의 박치기가 터지면 세상이 함성으로 들썩거렸다. 이 책을 보자니 그때의 함성이 귀에 쟁쟁하다.
-정재형 경기도호남향우회총연합회 회장

고흥은 대대로 장사를 많이 배출한 고장이며 그중에서도 김일 선수는 고흥군 출향민 70만 명과 함께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이며 이 책은 김일의 시대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송호림 재경고흥군향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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